시집-가막살나무 2부

반딧불이

servent 2018. 9. 24. 20:00

 

반딧불이

 

 

반딧불이는 숲에서 삽니다
반딧불이 애벌레는 해맑은 계곡의 맑은 물에 삽니다
밤하늘 달을 보며 별을 보며 삽니다
계곡을 따라 가득한 달맞이꽃을 보며 삽니다

달 없이 어두운 밤
반딧불이가 풀숲에서 영롱한 불빛으로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면

거기 달맞이꽃이 그리움의 편지를 씁니다

반딧불이의 영롱한 반짝임은 햇살과 달빛과 별빛의 반짝임입니다
조용한 숲속 계곡
맑은 물속에서 반딧불이는 햇살을 줍고, 달빛을 줍고, 별빛을 주우며 삽니다
해님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고
달님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고
별님이 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조용하게 맑은 계곡의 물속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햇살이며 달빛이며 별빛들이 너무 예뻐 그 작은 조각 하나하나를 주우며 행복할 뿐입니다
알에서 깨어난 작은 애벌레는 조용하게 맑은 숲 속 계곡에서 햇살을 주우며 달빛을 주우며, 별빛을 주우며, 낮에는 파란 하늘로 희망을 채우기도 하고, 금빛 햇살 조각으로 환희를 채우기도 하고, 밤에는 하얀 달빛 조각으로 꿈을 채우기도 하고, 별빛으로 그리움을 채웁니다
계곡의 해맑은 물로 생각들을 씻어낸 마음은 달맞이꽃의 향긋한 내음으로 채웁니다
싱그러운 물소리와 산새소리, 바람소리, 풀숲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로 가슴 가득 채웁

니다
계곡물에 떨어져 내려 맑은 물로 더욱 예뻐진 낙엽을 주우며 단풍 빛 고운 빛깔로 가슴을 채웁니다
하얀 눈 펑펑 내리는 밤엔 하얀 눈송이마다에 그리운 얼굴들을 그리며 마음을 하얀 빛깔로 채웁니다
봄볕 한 줌에 계곡을 따라 연분홍 서러움을 담아내는 진달래꽃을 바라보며 시린 그리움을 담고, 은방울꽃 하얀 웃음소리도 담고, 둥굴레의 수줍음도 담고, 보랏빛 제비꽃의 반듯함도 담고, 들장미의 알싸한 향기도 담습니다
한여름 밤 하얗게 흐드러진 때죽나무의 합창을 담고, 까치수영의 살풀이춤도 담고, 푸른 숲속의 참으아리의 노래며 진홍빛 산나리의 고움도 담습니다
가을 산속의 까만 머루 열매며, 빨간 가막살 나무 열매의 꿈을 담습니다
가을 숲속 가득한 가슴 시린 풀벌레 소리를 담습니다
겨울 숲속 모두를 비워내고 가벼운 몸으로 깊은 잠에 빠져든 겨울나무들의 가벼운 영혼을 가슴 가득 담습니다
그렇게 시간들이 지납니다

어느 여름날

반딧불이는 깜짝 놀랍니다
자신의 가슴에서 반짝이는 영롱한 빛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이 행복이 환희가 반딧불이의 영혼에 가득합니다
모르는 사이 반딧불이는 숲의 영롱한 빛이 되었습니다

 

 


'시집-가막살나무 2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꾼의 일기 2   (0) 2018.09.24
나무꾼의 일기 3   (0) 2018.09.24
감이 이야기 (정채봉 동화 오세암)   (0) 2018.09.24
길손이 이야기 (정채봉 동화 오세암)  (0) 2018.09.24
사랑은 아픔이다  (0) 2018.09.24